2010년 4월 9일 금요일

nom 인도를 보다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야?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내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다. 카메라 사야 되는데 어떤걸 사야되? 와 거의 비슷할만큼 듣게 된다.
많이 듣는질문이라는건 대답도 바로 나온다. 그리고 대답을 하기 위한 추임새와 타이밍도 이제는 제대로 알고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는 나에게 티벳 그리고 여행자로서 나에게 인도.

몇번이나 인도를 다녀왔지만 여전히 나에게 인도는 언제나 그립고 말을 하기가 점점 조심스러워져 가는 그런곳이 되어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끝도 없는 무질서로 밖에 보이질 않는 그들만의 법칙속에서
살아간다. 인도라는 토양속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물고기들도 크게 자라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천혜의 환경에서도
그들은 가난하기만한 삶을 살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끈적해진 손바닥이 즐거워지고 마살라향이 이끄는 곳으로 흐느적 흐느적 걸어가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nom 인도를 보다. 시작합니다





싸이클릭샤는 인도에서도 가장 하층민들이 가지는 직업중 하나다. 주1) 좀 더 오래전에는 핸드릭샤를 더 많이 사용했을테지만 그리고 점점 오토릭샤들이 많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큰 도시들이 아닌 작은 도시에는 여전히 싸이클릭샤는 인도를 대표할법한 운송수단이자 하나의 직업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처음 인도에 도착했을때 사이클릭샤를 타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내 앞에 근사하게 생긴 인도남자가 굉장히 너저분한 옷을 입고 다 떨어져가는 샌달을 밟아 나를 어딘가로 옮겨주는 모습은 뭔가 세계평화에 어긋나는 기분이고 마치 내가 아잔타시절의 부잣집 첩실의 자식이나 된것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곤 하니 말이다.
허우대는 멀쩡하더라도 보통의 인도인들은 나에비해서도 힘도 약하고 말그데로 비실비실한 편이다. 그런 뒤에 카메라 들고 앉아 다리꼬고 느긋하게 바람을 가르는 손을 느낄만한 깜냥은 내게 없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몇차례나 인도를 찾으면서 그들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지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고 지나가다 만나게 되는 짜이장수꼬마에게 1루피를 주고 릭샤왈라와 짜이한잔을 나눠먹을줄도 알게되었긴하다. 하지만 여전히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계시던 캘커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핸드릭샤는 좌불안석이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좁쌀만한 소갈머리 어딜가겠는가.

릭샤왈라들에게 릭샤는 그들의 모든것이다. 릭샤위에서 잠을자고 릭샤위에서 밥을 먹고 릭샤위에서 먹기위한 돈을 벌고 그리고 인도어딘가에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한 돈을 모으게 해주는것도 릭샤다. 비틀즈의 방문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인도여행자들 덕분에 인도엔 신흥부자들이 꽤 많다. 게중엔 눈치빠르고 수완좋게도 금새 돈을 모아서 여러가지로 불편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인도인들도 많이 있지만 보통의 그들은 꽤나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한다.




인도인들은 잘생겼다. 그리고 예쁘다. 헐리웃영화의 어딘가쯤에서 언뜻 얼굴이라도 보았을법한이들이 인도에선 거지다. 우즈베키스탄에가면 김태희가 밭매고 있다는 말과는 좀 다른의미지만 확실히 인도인들은 잘생겼다.
이사진은 2005년에 ‘이 nom의 인도전’ 포스터에 썼던 사진이다. 나에게 인도를 가장 리마인드 시켜주는 사진중 하나다. 첫번째 개인전이었고 혼자 편집하고 사진뽑아내고 액자만들고 하면서 한동안 뚝딱 거리면서 준비한 전시회였지만 결과는 뭐 참패였다. 덕분에 아직 이사진으로 만든 엽서가 꽤 남아있다. 단돈 천원에 모셨는데 말이지 궁시렁궁시렁..




인도의 도로는 그야말로 혼돈 그자체다.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목쉰 경적소리 그리고 차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의 송아지들 힌두교는 송아지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가 무엇을 하든 그저 내버려둔다. 소얘기는 좀있다 더 하기로 하자.
다시 도로로 돌아와서 처음 인도에서 엄청나게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곤 했다. 도대체 왜이렇게 울려대는건지 그리고 저렇게까지 애절하게 쉰목소리 높여서 울려대는 경적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길을 가는 운전자 보행자 송아지들을 보면서 도무지 인도라는 나라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처음 도착했던곳이 수도인 델리인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서울 한복판에서 어떤 운전자가 저런식으로 경적을 울려대며 운전을 했다면 아마도 한시간도 못되서 경찰이 달려와 잡아갔을게 뻔하다는 생각을 마구 해대며 경적소리에 온갖 불만을 털때즈음 차 뒤에 ‘HORN PLZ’ 라는 글귀를 보게 됬다.
이건 도대체 뭘까.. 영어가 통하는 호텔직원에게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도이고 나는 장기여행자다 여인숙을 생각하는편이 좋다. 어쨋든 호텔직원에게 사진까지 들이밀며 물었다.
인도에는 타타스모라는 거대한 자동차기업이 있다. 언뜻 일본인이 회장님이 아닐까 싶은 이름이지만 그것까진 알 수 없고, 인도의 물가가 아무리 저렴하고 인력이 저렴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공산품의 가격까지 저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산품이 가지게 되는 최소한의 재료비는 어찌되었든 소비자가격에 고스란히 들어오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뉴스에도 나왔지만 최대한 옵션을 빼내서 인도의 국민들이 살수 있을정도의 가격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낸곳이 타타스모다.
사정이 이렇고보니 에어컨이나 라디오는 물론이고 사이드미러까지도 옵션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더럽게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 없는것도 죽겠는데 라디오야 그렇다 치고 사이드미러까지 옵션이라니 보통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지만 어쩌겠는가 인도다. 그래서 사이드 미러 없는 자동차들은 뒷차가 있는지 없는지 따위를 알 수 없게 되었고 뒷차가 미친듯이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앞차에게는 고마운 소리가 되는 재미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인도에서 택시를 탈일은 많지 않지만 오토릭샤를 타게되면 끊임없이 목쉰경적소리를 울려대며 달려가는 옐로우캡 오토릭샤는 그 소음의 주범격이고 말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아주 저렴한 사이드미러를 만들어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에와서는 달짝한 마살라향과 먼지가득한 하늘과 함께 귀가득 들리는 경적소리는 내가 지금 인도에 있다는걸 알려주는 사인이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인도의 여자들은 예쁘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 아름다움이 빠르게 사라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돈을 버는 방법도 제대로 알려줬다. 동네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면서 ‘one roopy’를 외치는건 귀엽긴 하다. 하지만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내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은 나에게 셔터 숫자까지 세는 치밀함을 보여주던 악덕 동업자 꼬마녀석이 외치는 20루피!! 는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즉석에서 흥정을 한다. 비싸다 게다가 나에게 필요한 사진은 한장뿐이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건 이 한장 뿐이니 그렇게 비싸게 못주겠다. 물론 그녀에게 경외심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당한 노동을 했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나에게 요구했을 뿐이지만 뻔뻔할만치 당당한 비용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인도인에게는 가트가 있다. 작은 호수도시 푸시카르는 3대 히피의 성지이기도 하고 가트의 도시이기도 하다. 가트라는건 물과 맞닿은 계단을 말 한다. 보통은 사원과 연결이 되어있지만 호수가에 자리잡은 도시이고 보면 집 뒷마당이랑 연결되어있기도 하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어째서 저들의 피부느낌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손바닥이 끈적해지는 느낌.. 하지만 결코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끈적함이다. 나는 그 끈적함을 사랑한다.
끈적한 손바닥에 관련된 에피소드.
인도인들이 왼손으로 대변후 일처리를 하는건 많이들 알고 있다. 그래서 인도 화장실에는 1l가 조금 안될것같은 사이즈의 물통이 놓여져있다. 뒷처리를 하고 그 물로 손을 씻는다. 는것이 프로세스.
하지만 손바닥이 꽤 건조한 그들과는달리 내 손은 끈적하다. 그래서 뒷처리후에 아무리 손을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것 같은 느낌이 남는다.
내가 사랑하는 끈적함은 화장실에 갈때마다 비누를 들고가게 만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그 끈적함을 사랑한다.







원숭이는 정말 귀찮고 나쁘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인도의 수없이 많은 신들중에 나는 하누만을 굉장히 좋아 한다. 서유기의 손오공의 모티브였던만큼 그는 원숭이다.
하누만의 이야기 하나
전쟁이 있던 중이었다. 하누만은 자신의 병사들이 부상당한 모습을 보고 아파한다.
그래서 주변의 사두를 찾아가 병사들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를 묻는다.
끽끽~ 우끽끽 이라고 하진 않았겠지만 그의 모습을 보면 왠지 그랬을 것도 같다.
사두는 약초의 모습을 설명해주고 그것이 있는 산의 위치도 알려준다.
하누만은 구름을타고 그 산으로 당장에 날아가 약초를 뒤적여보지만 풀이나 약초나 비슷하다.
결국 하누만은 그 산을 통째로 떠서 전장으로 돌아왔고 사두는 그 약초로 병사들을 치료했다는 이야기.





하누만은 신이지만 약초는 구분할 줄 모른다. 인도의 신은 다 이런식이다.
물론 자신의 성기를 끌어안고 한달동안 춤을춰서 근방 모든여자들을 임신시켰다는 시바는 좀 다르지만 말이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도 제우스를 제외한다면 그들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있다. 그 결여됨은 그 신의 아이덴터티를 만든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것도 왠지 비슷하다.
언제나 듣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식상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어디에나있는 신들의 비슷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재미있다.

다시 원숭이로 돌아오자.
어느나라에서든 원숭이는 나를 귀찮게구는 정말 싫은 녀석이다. 세렝게티에서 블루멍키는 나의 소중한 과자를 가져가셨고, 인도에서의 원숭이도 자꾸만 내 과자를 탐했다. 그래도 세렝게티의 블루멍키는 fire egg가 푸른색이라 볼거리라도 제공해주었지만 주2)




방앞에 이런녀석이 기웃거리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좀 많이 달라진다. 여행 순서데로 글을 써달란 부탁을 받았기때문에 좀더 나중에 나와야 바라나시의 사진이지만 원숭이이야기라면 이녀석을 빼놓고는 절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데려왔다.
이녀석의 별명은 eveil monkey. 단순히 피부병이 있는 녀석이긴 하지만 내 방에서 몇번 ‘half and half’ 주3)를 훔쳐간 이후로는 늘 저런식으로 내 방 창문 아래에 대기 하고 계신다. 뒤에 다소곳한척 앉아 있지만 보통은 악마원숭이는 과시용일뿐 행동을 주로 하는 녀석의 와이프는 더 얄밉다. 내가 악마원숭이를 무서워한다는것쯤은 얼마든지 알고 있다는듯한 느낌으로 날 관망하곤 했으니 말이다.

참 고민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바라나시의 내 숙소 주4) 저 방은 내가 바라나시를 찾을 때마다 묵는 굉장한 명당이다. 지금은 개보수 되서 예전 모습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 방앞에 저리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인간으로 치면 왠지 창자꺼내서 줄넘기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것 같은 녀석이라니.. 왠지 싸워도 내가 질것같다. 하하하핫...

어찌되었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원숭이가 참 싫다. 하지만 인도는 원숭이가 참 많다. 그러니 신이 나왔겠지만..
원숭이 옆을 지나는건 어릴적 동네 사나운 개xx옆을 지나는것만큼이나 긴장되고 불편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종류의 일이다. 이럴때 생기는 끈적함은 좋아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일본원숭이들이 독도도 탐하고 있다. 주5) 딱히 요즈음의 일만은 아니지만.. 원숭이는 탐욕스럽다.








푸시카르에서 서쪽으로 좀더 가면 자이살메르라는 곳이 있다. 인도에서 좀 더 라고는 해도 차로 하루는 꼬박 이동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자이살메르는 사막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사진에 있는 사내는 그 사막에 여행을 왔던 미국 여자가 인도 남자를 만나 태어난 아이다.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렸고, 버려지게되었다. 는 왠지 너무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이다.
사막을 도는 내내 그는 굉장히 성실한 사내였다. 내가 타고 다니던 낙타 킁킁이의 낙타몰이꾼이었는데 보통 인도 낙타몰이꾼들이 손님뒤에 함께 앉아서 가기도 하는것에 비해 그는 언제나 사막을 자신의 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내였다.
가끔씩 나에게 노래 한곡을 불러주고 나는 그 답례로 2루피를 주곤 했다. 노래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노래 자체가 썩 좋은 노래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겟지만 나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좋았고 그가 끌어주는 축농증 낙타 킁킁이가 퍽 좋았다.




































주1)

아리안족이 인도로 이주하면서 선주(先住) 민족을 정복하고 동화시켜가는 과정에서, 소위 카스트 제도라고 하는 특유한 사회제도가 발달했다. 바라문 또는 브라 만[神官], 크샤트리아[武士], 바이샤[庶民], 수드라[奴婢] 등의 4성(姓)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기의 카스트에 속하며 결혼·직업 등은 동일한 카스트 내에서 행해진다.

브라만교 이후의 힌두교 제사(祭祀)는 브라만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행된다. 크샤트리아는 무사계급으로서 왕족이 여기에서 나왔다. 바이샤는 농목업(農牧業)·상업·수공업과 기타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서민계층으로, 후에 각 직종(職種)에 따라 2차 카스트가 생겼다. 카스트의 최하위는 수드라로서 대부분 피정복민으로 구성되었고, 상위 카스트의 노비(奴婢)로 종사한다.

4 성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아우트 카스트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생겨, 이들은 거주(居住)·직업 등에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간디는 이들을 신(神)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 독립 후 불가촉천민제를 폐지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그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장학금제도를 설치하고,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기도 하였다. 헌법상 카스트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나마 대도시에서는 점차로 차별이 해소되어가지만, 지방에서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 두산백과사전 발췌

그중 릭샤왈라는 가장천민인 수드라에 들어간다. 하지만 오토릭샤로 가면 상황이 좀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들은 카스트에따라 살아가고 카스트에따라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고 있다.




주2)


살아오면서 이런 매콤한 매력을 가진 녀석은 처음봤다.
블루멍키라고 물리는 이유를 몇장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를 뒤로하고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 시원하게 한참을 웃어댔다.
세렝게티에서 보았던 녀석들중에 니가 최고다.






주3)
이미지를 찾는데는 실패했지만 하프앤 하프는 인도에서 꽤 팔리고 있는 과자다. 모양이나 맛은 오레오와 굉장히 비슷해서
가끔 당분이 부족해질때면 입에 달고 사는 과자다. 바라나시에 머물던 즈음의 나는 반반교를 믿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주4)



인도의 그리운것들에게 순위를 매기자면 4위나 5위쯤에서 짜이와 100합을 겨뤄야 할 호텔 엘레나다.
원래는 성이었던것을 개조해서 호텔을 만들어 둔것인데 저곳은 마하라자와 마하리니(왕과 왕비)가 묵곤 햇던 방이다.
지금은 개보수가 진행되서 꽤 비싸졌다는데.. 갈때마다 올드프랜드 올드프라이스.. 를 외치던 유진이 아직 있다면
옛날 가격으로 방을 빌려줄지도 모르겠다...






주5)일본은 지난 4월7일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규정하고 교과서에 그 내용을 싣겠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나는 분노한다.